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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추석 추모감사기도 단상-“Carpe diem Momento mori”

신민형 | 기사입력 2024/09/16 [15:45]
하늘소풍길 단상

2024 추석 추모감사기도 단상-“Carpe diem Momento mori”

하늘소풍길 단상

신민형 | 입력 : 2024/09/16 [15:45]

 


추석의 추모감사기도를 조상 영혼에 대한 추모에 비중을 두어 올릴 것인가,

한가위를 함께 즐기는 나와 가족의 기적같은 삶에 감사하는데 비중 둘 것인가.

 

올 추석을 앞두고 기도문 구상을 하며 고려한 것이다. 10여년 전 어머니가 불멸의 세계로 떠나신 후 차례나 제사 대신 추모기도로 대체하며 매년 명절마다 준비했던 기도문을 이번엔 새롭게 애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블로그에 기록했던 그동안의 기도문을 다시 음미해보니 묘하게 조상 추모와 가족들 삶의 예찬을 균형있게 담았다. 굳이 죽음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분명 喜怒哀樂愛惡慾의 삶에 대한 혼란, 가까워지는 죽음에 대한 명상에 더욱 빠져들었을 것 같은 해인데도 적절히 배합을 한 기도였다. 기도문 초기에는 지방 써 붙이고 차례올리는 의식을 올리지 못한 죄책감에 조상 추모에 비중을 두었지만 차츰 비중이 같아졌다. 그것은 아마도 조상추모의 의례가 내 뼈속 깊이 잠재한데다 실질적으로는 가족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은연 중 내 심중의 생각보다는 시대 흐름과 주변의 상황에 맞춰 사고하고 처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생사관, 종교관, 이념 등 내 신념을 드러내놓고 강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죽음은 컴퓨터가 폐기되듯 육신과 영혼이 사라진다는 한 때의 생각도 감히 떠벌리지 않았다. 하나님과 신에 대한 경외가 인간 사회에 퍼져 있는 가운데 ‘shy 무신론자로서 종교의 가치도 주제넘게 이야기했던 거 같다. 좌파, 우파의 못마땅함을 ’shy 좌파, 우파로서 평범하게 양비론으로 펼쳤다. 마치 다윈이나 뉴턴, 갈릴레이와 중세의 계몽철학자들이 원자론, 진화론을 직설적으로 주장하지 못하고 창조론, 지적설계론을 밑바탕에 깔고 완곡하게 주장했듯이... 진심의 위장이었을까, 아니면 이어져 내려온 각인된 사고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 현재의 내 사고에 유교사상이 깊이 각인 된 것인지, 한국 사회와 내 주변에 널려있는 신앙인의 사고에 물들어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과 돈 등 세속적인 것을 터부시하던 조상 할아버지의 습속이 여전히 내 생활과 사고를 점령하고 있으며 종교와 신의 인간창조설, 거짓과 폭력, 사기극을 폭로하는 짓은 불경스러울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드르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현대에 들어서 생사관, 종교관, 이념 등에서 이단, 혁명적인 것들을 당당하게 펼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에 띠라 나도 많이 계몽된 듯 하지만 나는 아직 ’SHY 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직 내 생각들을 정립해나가고 있는 중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번 추석엔 애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내 생각을 과감하게 전달하기 위해 추석 앞둔 몇가지 단상을 이야기하며 기도문 작성을 시도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의 역사와 가치를 열심히 유튜브를 통해 알리고 있는 스님이 몇 년만에 추석 안부 전화를 했다. 내 큰 소녀가 갓난 아기 때 나와 만났었는데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니 10년 세월이 순식간에 지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50,60대는 10년 고비로 그럭저력 살아가지만 70대가 되면 3년마다 고비기 온다며 몸관리를 당부했다. 스님은 나보다 세 살 위인 73세로 지난 3년 동안 문화재단의 기반을 마련하느라 동분서부했고 앞으로 3년 동안은 문화재단의 초석을 다지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와 통화를 하며 나도 영원히 살 것 같은 생활보다는 3년 동안 살 생각으로 나와 주변에 대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런 기간이라는 것을 각성하는게 죽음을 맞는 삶을 평안하고 넉넉하게 해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일 죽어도 후회없을 오늘을 알차게 보내자는 포부도 가지려 했다.

 

미국 보험사에서 만들었다는 기대수명 계산기가 수년 전부터 SNS에 퍼졌는데 최근 나도 이를 통해 내 잔여수명을 계산해보았다. 78, 앞으로 8년 남았다. 뭔가 아쉬운 듯 해 계산표에서 흡연 대신 급연 상황으로 슬쩍 바꿔 보았더니 10년이 연장됐다. 순간 담배를 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일 당장 죽어도 좋다는 말은 내 진짜 속셈이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악착같이 약 들고, 날마다 만보 걸으며 수명 늘여봐야 신숭겸 할아버지 37, 단군할아버지와 인류 문명 500여 세, 인류탄생 1500만년, 생명탄생 30억년, 우주탄생 147억년에 견주면 세월이랄 것도 없는 순간이다. 그러나 희노애락애오욕 한 순간 일생이 우주 역사만큼 길게 느껴짐을 어쩌랴.

 

번철환 시인은 하루 일생 하루살이, 칠일 삶 매미, 70 평생 인간, 천년 생명 거북이의 한평생을 읊으며 원래 짧고 긴게 없는 상대적 개념이라며 노래했다. 각자 그 기간 생로병사의 과정을 우주의 긴 생명처럼 겪어나간다. SNS에서 수없이 떠돌아 많은 사람들이 접하지만 읽은 순간만 공감하고 곧 그에 상관없이 영생하는 듯 생활한다. 이 역시 반복되는 순환이다.

 

 

시대가 기적처럼 좋아져 내가 보고 듣고 읽는 지식과 정보의 양이 인간문명 이래 어느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이 많아져 우주, 지구, 인생의 탄생 역사와 대우주와 동서양 지역을 넘나들게 되었다. 신문스크랩이나 비디오, 어학사전, 백과사전에서 해방되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맘껏 검색, 탐색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다.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인간 삶과 죽음에 대한 궁극적 물음과 해답을 추구한 축의 시대를 형성한 조로아스터,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를 수시로, 한정없이 접할 수 있으니 수천년 철학과 사상을 쉽게 맛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3년 동안, 아니 하룻동안 살아도 이들을 알며 산다는 게 바로 삶의 의미이자 행복인 듯 싶다.

 

2024년 추모감사기도는 이러한 단상들을 묶어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의 생사관, 종교관, 이념 등 내 신념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없다. 아니, 영원히 정립시키지 못할 것이다. 단지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추구하며 사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다만 이번 추석에는 조상 추모보다 애들 삶에 대한 감사에 비중을 두어 ’Carpe diem Momento mori‘를 제목으로 단다. “지금을 즐겨라, 다만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금언은 지금 살아가는 나와 가족들에게 삶의 의욕과 겸손함을 가르쳐줄 것이다. 근래 섭렵했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철학, 종교, 역사서를 총 정리해준 듯 싶다. 이 금언 역시 기원전 900~기원전 200축의 시대때 이미 회자된 말이다.

 

내 생사관, 종교관, 이념이 시대 분위기와 내 경험에 따라 변화가 있을 테지만 ’Carpe diem Momento mori‘란 금언은 경전처럼 자리잡을 것이다. 그동안 내 죽음과 삶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이 변덕을 부려왔지만 내 카톡 대문 프로필에 쓴 이 말씀은 카톡 개통 이후 줄곧 써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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