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의 실체와 규모 그리고 그 수준의 다양성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 結(2)- 마지막회이승과 저승의 실체와 규모 그리고 그 수준의 다양성
연재 마지막 158 회에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마지막 장인 제13장 ‘結’의 내용 중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이승과 저승의 실체와 규모 그리고 그 수준의 다양성
불교에서는 우리의 수미세계가 11개의 세계로 구성된 6道의 욕계와 18개의 天으로 구성된 색계, 그리고 네 가지 다른 수준의 세계로 구성된 무색계 총 서른세 종류의 세계로 구성된다고 하는데 이는 대충 우리 은하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적생물체 거주행성의 수다. 따라서 불교의 1 수미세계는 1 은하계에 해당한다고 본다. 불설은 다시 이러한 수미세계 10억 개가 모여 하나의 사바세계를 이룬다고 한다.
그런데 전술한 대로 오늘날 자연과학이 밝혀낸 우주의 규모는 항성 수만 대략 40,000,000,000,000,000,000,000(400垓)개이니 전 우주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3계6도의 수미세계가 200,000,000,000(2,000億)개 있고 사바세계는 200개가 있는 셈이다. 불설의 사바세계와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규모를 이러한 숫자를 통하여 비교함은 물질세계의 규모를 가지고 혼계와 영계를 포함하는 우주의 규모를 따지려는 허황된 시도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물질우주를 보면 상즉상입으로 상호조응하는 피조계(被造界)의 원리상 저승의 규모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물질세계의 거대한 규모와 다양한 양태를 보아 AASB의 저승세계 또한 그 종류가 많고 거기에 거주하는 유정들의 영성 수준과 문명의 발달 정도 역시 서로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불설에서 말하는 이처럼 다양하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바세계에 대한 생각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실에 가장 근접한 우주관이요 세계관으로서 다른 유수한 종교와 사상에서도 다음과 같이 긍정되고 있다.
1) 근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영계통신(Channelling), 생간 삶(Life Bet ween Lives), 사후통신(After-Death Communication), 퇴행최면(past-life hypnoticregression) 등에 의해 얻은 저승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에 의하면 각 종교와 사상에서 말하는 저승의세계는 큰 틀에서는 매우 유사하나 세부적으로는 서로 설명하는 바가 많이 다르다. 그 이유는 저승의 양태와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수 있다.
2) 힌두이즘이나 불교, 도교 나아가서 심령주의(Kardecism), 유란시아서 등 뉴에이지 사상에 나타나는 저승은 그 막대한 규모와 정신문명수준의 차이 그리고 완벽한 상호격리와 윤회에 의한 계층 간 이동, 물질세계에서의 삶을 통한 영혼의 발전과 진화 등에 대해서 그 묘사하는 내용이 매우 비슷하다.
3) 또한 수없이 전술한바 유수한 종교와 사상은 대부분 (1) 저승에는 많은 계(界)와 층(層)이 있으며 (2) 이승이 외계(外界)와 공간과 거리로 완전히 격리되어 서로 교통하기 어려운 것처럼 저승의 계와 층 사이 또한 서로 격리되어 있어 윤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간을 이동하기 어렵고 (3) 이승과 저승의 각 세계는 물적, 영적 양면으로 그 수준의 차이가 크다. 특히 영적인 차이는 각 종교와 사상 간의 인간론과 저승론의 차이를 초래한다.
따라서 우주는 수천억조 개의 수미세계로 구성되었다는 불교의 허풍이 허풍만은 아닐 만큼 그 규모와 다양성이 대단할 수 있다.
기(氣)로부터의 영혼탄생론
혼이 기로부터 유래한다는 생각은 힌두이즘부터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와 동양의 도교 그리고 유교 성리학, 거기에 기반한 우리나라의 무교(巫敎)적 민속신앙, 심지어는 한의학과 양자역학註1)까지 긍정하고 있다. 푸루샤가 프라크리티(prakrti)에 작용하여 자의식인 아함카라가 만들어지는 힌두철학이나 제2로고스의 생명(Vitality)인 프라나(Prana)가 물질을 진화시켜 동물의 그룹혼까지에 이르게 한다는 신지학, 그리고 카발라에서 아인 소프 오르의 빛이 10개의 세피라와 22개의 통로(pass)를 넘쳐흘러 물질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나, 태허에서 묘일이 나오고 天地人 삼재가 나오는 도가(道家)의 주장이나, 태극에서 음양의 기가 나오고 여기에서 오행이 나온다는 유가(儒家)의 생각은 모두 표준이론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영과 혼의 생물학적 진화
또 신지학 그리고 유란시아서는 영과 혼의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견해가 표준이론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다만 각론에 이르러서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남을 감출 수가 없다. 한편 최근 기독교의 급진적 유신진화론은 육체뿐 아니라 영혼 또한 진화에 의해서 탄생한다는 표준이론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이는 네샤마 사건으로 인하여 각혼에게 지혼으로의 진화 길이 트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불교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결과적으로는 혼의 진화에 의한 靈의 탄생을 말하고 있다.註2)
영과 혼의 각자 윤회 사상
신지학 그리고 유란시아서는 영과 혼의 각자 윤회 사상이 큰 틀에서 볼 때 표준이론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신지학의 영인 인간모나드는 각혼(覺魂)인 아스트랄체와 아스트랄계에서 헤어지고 상승한다. 하강할 때에도 또 다른 각혼에 승하여 물질계에 환생한다. 또 유란시아서는 명종 후 맨션월드(mansion world)에 달하기 전까지 전개되는 ‘필사자 혼’과 ‘생각조절자’ 간의 이합(離合)을 말하고 있다.
혼의 靈化론
한편 불교에서 말하는 아라한의 탄생과정은 표준이론에서 혼의 靈化를 설명하는 것과 그 내용상 아무 차이가 없다. 또 혼의 영화사상은 영지주의와 헤르메스 그리고 힌두와 자이나교 나아가서 우리 고유 종교인 대종교의 성명정(性命精)에서도 그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신지학과 유란시아서 등 일부 뉴에이지와는 나무를 보는 눈은 달라도 숲을 보는 눈은 공유하고 있다.
結의 結
본서의 서문에서 표준이론이 통합이론을 지향하면서 주요 사상들을 한 프레임에 일이관지(一以貫之)로 모두 담아내는 것이 목표라고 천명(闡明)하였음에도 이를 완벽히 달성하지는 못한 듯하다. 이는 著者의 표현력 부족에도 그 원인이 있겠으나 아직 공부가 태부족하고 수행이 더딘 데다가 애초에 그릇이 작아 각 사상에 녹아있는 ‘있는 진리’와 ‘뻔한 섭리’도 다 발견하지 못하여 그렇다는 점을 어찌 부인하랴. 命終토록 더 공부하고 찾아볼 셈이다.
표준이론에 담은 참이 아직 부족하고 또 시의(時宜)에 맞지 않아 뭇사람들에게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것 또한 순리다. 이럴 때 맹자의 말씀이 적절하다. “대인은 말이 믿어지기를 기대하지 않으며, 행동에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의가 있는 바를 따를 뿐이다.”註3)
結詩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도 언젠가는 소멸을 맞을 것이요 파괴될 것이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註4)
이런 생각으로 나는 비탄과 시름에 잠겨 머리를 싸매고 가슴을 치다가 어린 나이에 벌써 죽음의 나락註5)에 빠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세상은 어차피 그보다 더한 나락의 연속이어서 죽음의 나락은 가슴 한쪽에 묻고 가끔 꺼내어 비탄할 뿐 다른 여러 나락에 빠져 발버둥 치며 살아오기 육십 년 어느덧 甲을 넘겨 옛날 같으면 벌써 命終하였을 터 어릴 적 빠졌던 나락에서 이대로 죽는다면 恨을 남긴 생이 되고 말 것 같아 열 일 제치고 죽음에 매달려 이리저리 궁구하기 수년째 이제 금생을 고투한 나의 혼 그리고 그 後生을 위하여 이 책을 썼다註6)
<註釋> 註1) 6.6.1. ‘데이비드 봄의 양자형이상학과 표준이론’ 참조
註2) 1. 부록5 ‘주요 종교와 사상의 영혼관 개요’와 부록7 ‘주요 종교와 사상별 영과 혼의 정체’ 그리고 11.3.3. ‘영과 혼이 각자 윤회하는 표준이론’ 참조 2. 그러나 유란시아서는 모든 혼에게 짝지어진다는 생각조절자라는 독특한 존재를 말하며 혼은 이 생각조절자와 융합하여 진정한 영이 된다고 함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영화(靈化)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표준이론과 유란시아서 간의 이러한 차이는 ‘나무의 차이’일 뿐으로 ‘숲을 보는 눈’은 서로 통한다.
註3) 1. 大人者 言不必信 行不必果 惟義所在 2. 이제 다만 섭리의 도우심과 환생재단의 힘으로 著者의 後生이 유언(遺言)으로서의 이 표준이론과 유산(遺産)으로서의 재단기금에 緣이 닿아 그가 유언을 체득하고 유산을 선용하여 주어진 시간을 보람차게 씀으로써 하느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할 뿐이다.
註4) 사람들은 나도 언젠가는 소멸을 맞을 것이요, 파괴될 것이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죽음의 공포로 비탄과 시름에 잠겨 자기 가슴을 치고 마침내는 돌이키기 어려운 피폐의 나락에 빠진다.… 비구여, 무명(無明)의 대중에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모두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MA Ⅱ, 112쪽, MNⅠ(근본법문경) 136~137쪽 외).
註5) 죽음의 나락(奈落)은 ‘죽음의 공포(恐怖)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으로 공(恐)은 한의학에서 칠정(七情) 중 하나이다. 불교에서는 공(恐) 대신 두려울 구(懼)를 써서 공포가 인간이 벗어나기 힘든 마음의 정서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恐은 七情보다는 四苦에 더해져 生老病死恐의 五苦로 기록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한다. 註6) 환생플랜의 일부인 본서가 實로 기대하는 독자는 저자의 혼과 그 혼의 후생이다(미주 285 ‘환생 플랜’ 참조). 그러나 조그마한 법보시(法布施)라도 되어 利他의 功이 된다면 오죽 좋으랴!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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