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에 풍기는 높고 맑은 기품은 추근이 분명히 부유하게 자랐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방 안에 조형물로 만들어 놓은 추근의 원숙한 용모에서 청정한 묵색의 미묘한 느낌이 든다. 시에서 드러난 비범한 필체와 그 속도감 있는 붓 자국에는 눈에 안 보이는 기운이 서려있다.
“혁명에 임하다 보면 내일을 알 수 없지 않는가. 문득 하루아침에 죽으면 초목과 같이 썩어질 것이 아니오! 그러니 무술을 연마하면서 틈틈이 여가 날 때마다 발전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시문(時文)을 써 둔다오!”
필체는 붓 자국 하나하나에 골기라고 부를 수 있는 힘이 맺혀 있으며 농담을 가려쓴 먹색의 깊은 맛이라든지 그녀의 독특한 담채에서 오는 갓 맑고 빛나는 농도에서도 강하고 아름다운 추근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성 해방이라는 숙원을 풀기 위해 고통스러운 아픔을 겪으며 오고 오는 세대의 수백억 가슴 속에 여성 최초 혁명가의 이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성장하면서 봉건예법에 저항하였고 남녀는 평등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스스로 ‘화목란’ (뮬란)에 비유하였다. 여자도 남자처럼 무술을 익혀야 한다면서 본격적으로 무술로 무장했으며 도검 애호가로 예리한 칼끝과 같은 치밀함을 지녔다. 전족은 여성을 육체적으로 폐인으로 만들어 활동과 노동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외치며 15세 때 자신의 전족을 스스로 풀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21세에 결혼한 추근은 1남1녀의 자식을 두었다. 선천적으로 강한 성격인지 몰라도 불행한 결혼 생활은 그녀를 이혼에 이르게 했고 전혀 다른 인생행로를 걷게 만든다.
1904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봉건제국 타도와 민주국가 건설을 위하여 혁명에 투신하였다.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사격과 무술 심지어 폭탄 제조 기술까지 익힌 그녀는 ‘삼합회’ 그리고 쑨원이 조직한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여 반청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06년 중국으로 귀국한 추근은 ‘광복회’를 조직하고 샤오싱에서 변발한 모습으로 검은 정장을 입고 말을 타고 다녔다. 호방하고 격정이 넘치는 혁명가로 변신한 모습이지만 곱디고운 얼굴은 숨길 수가 없었다.
몸은 남자의 반열에 들 수 없지만 (신부득남아열 身不得男兒列) 마음은 남자보다 더욱 굳세다오 (심각비남아열 心却比男兒烈)
1907년 서석린 등과 광복군을 조직하여 7월 6일에 절강, 안휘에서 동시에 기의하려 계획했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7월 13일 학당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에게 추근은 체포되었다. 당시 누군가 자신을 밀고한 것을 알았으나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도피하지 않았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간단 말이냐. 혁명은 피를 흘려야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다. 내가 단두대에 오르면 혁명이 5년은 빨라질 것이다.”
1907년 7월 15일 31세 추근은 “가을바람 가을비가 사람을 못 견디게 한다 (추풍추우수쇄인 秋風秋雨愁殺人)”라는 마지막 시를 남기고 사형장으로 향한다. ‘절벽위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 같은 추근은 흰색 한삼과 검은 바지를 입고 서양 구두를 신은 양 발에는 쇠고랑을 차고 양 손을 뒤로 묶인 채 샤오싱 헌정구(軒亭口) 처형장에 끌려 나왔다.
날카로운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을 한 병사는 그녀를 나무 기둥에 움직이지 못하도록 오랏줄로 단단히 묶는다. ‘난, 무섭지 않다오!, 아직 여성혁명가로 할 일이 많건만…, 이제 참수형은 나 한사람으로 족하니 더 이상 없길 바랄뿐이오!’
원형 모양새로 조여든 구경꾼의 얼굴은 마치 붉은 홍시처럼 상기되어 있다. ‘덜커덕!’ 묵직한 소리에 이어 “쿵!……” 땅이 울리는 둔탁한 메아리. 그들은 참수 당한 여성 혁명가의 나신을 광기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목덜미를 꿰뚫을 것만 같다. 마치 육신을 씹어 먹으려는 듯,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따라오는 굶주린 승냥이들 같다. 거무스름한 유리알들이 ‘우루루루…’ 뭉쳐지더니, 그녀의 나신을 흡혈귀처럼 물어뜯었다.
“혁명가 추근의 넋”
혁명가 추근 이름으로 천하에 맹세하고 할 일 남았지만 앞장설 듯 이젠 접으리 민중의 우매한 형상 가슴 속 헤집어놓네
용기가 솟구치니 내 어딘들 못가리오 여성해방 바로 선 참 모습 볼 수 없네 그 설음 누구에게 툭! 터놓고 얘기하랴
혁명의 외침 소리 피에 녹아 팔려가네 그대들 깨우치려 내 참 뜻 전하노니 거울 빛 비추듯 조명(照明)의 힘 키우라 (박현선)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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