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 운수지 을묘본’은 오수에 살고 있는 김진영 씨가 소장하고 있는 운수지를 저본으로 하여 학술교육원(대표 노방용)에서 출판됐고 번역과 함께 원문 이미지를 함께 실었다. 저본이 된 운수지 을묘본(1675)은 국가기록원에서 시행한 2024년 맞춤형 복원‧복제 처리 지원 서비스 사업을 통해 보수했다.
읍지는 당대의 지역 현황을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나 사찬읍지의 콘텐츠의 양은 전국 지리지나 도별읍지 등 관찬읍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운수지는 조선시대 임실현의 사찬읍지로 1675년과 1730년에 편찬됐고 1904년에 간행된 적이 있었다. 그 시초가 된 것이 이번에 발간한 운수지 을묘본이다.
그간 학계 보고에 따르면, 16~17세기 전라도 사찬읍지는 승평지(1618, 순천), 탐라지(1655, 제주), 용성지(1699, 남원) 등 3종이었다.
임실현 읍지 운수지(1675)가 출현함에 따라 전북특별자치도 최고의 사찬읍지가 된 것이다.
당시 신계징 임실현감은 고을사람 한필상, 이시연과 함께 32개 항목, 96면에 걸쳐서 임실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했다. 임실현의 별칭인 운수(雲水)의연원과 변천, 17세기 면리제(面里制)의 시행, 역대 임실현감 포폄, 각종 인물편에 포함된 행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후 열악했던 임실현 사정, 지역관련 인물들의 에피소드, 산천에 딸린 수많은 이야기, 국한문 혼용 가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고 있어서 17세기 임실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임실의 별칭인 운수(雲水)의 연원이 되는 운수정(雲水井)을 용요산 운수봉 아래 절골약수터에서 발견하게 됨에 따라 자료의 정확성이 남다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관 사또가 부임할 때 처음으로 이 물을 마시게하면 비록 혹리(酷吏)라고 가히 양재(良宰)가 된다”고 하는 특별한 우물이다.
심 민 군수는 “병자호란이 끝난 지 39년 만에 신계징 현감이 한 고을의 전후 복구는 물론 여러 가지 정무에 전념하면서 고을의 유적과 명성이 있는 선비들의 발자취를 남긴 것이 운수지다”며 “350년 만에 학예사와 지역 주민이 함께 국역서를 간행한 것이 참으로 인연이고 임실의 역사와 문화가 한층 더 깊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국역 운수지는 발간과 함께 학술교육원 사이트, 임실군청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될 예정이어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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