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의 ‘한국종교사상가 한밝 변찬린’⓷
민족종교와 기독교 신학에도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변찬린의 선맥의 도맥이호재의 ‘한국종교사상가 한밝 변찬린’⓷<연재순서> 1. ᄒᆞᆫᄇᆞᆰ 변찬린은 누구인가? 2. 풍류의 화신체 : 풍류객, 풍류심, 풍류체 (1) 풍류객 : 고통을 극복한 무소유의 면류관 (2) 풍류심 : 새로운 성경해석으로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의 혁신의 기틀을 놓다 (3) 풍류체와 포스트휴먼 : ‘로고스 늄’을 점화하라 3. 동방의 선맥 르네상스의 대선언: 고조선문명 – 풍류(선맥)담론 – 영성(靈聖)시대 4. 동방의 구도자 ‘새ᄇᆞᆰ’의 탄생
영원의 구도자로서 변찬린은 궁극을 사색한다. 그의 상황은 ‘삶은 죽음의 연습’이라는 한가한 말을 할 여유조차 없다. 그는 한국을 낡은 세계사의 결론이며 새 문명의 출발지라고 상정한다. 역사시대의 고난을 짊어진 분단 한국은 낡은 문명의 차별과 분열과 모순을 해체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명을 가진 국가라고 천명한다.
* 고요한 동방 아침의 나라가 밝아오면 영(灵)의 시대가 개막되리.(변찬린, 『선,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 183쪽.) * 대무(大巫)는 새날을 개명하는 한국인의 사명입니다. 화쟁(話諍)은 한국 혼의 저력입니다. 내 조국은 더러운 세계사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하여 보혈을 흘리고 있지 않습니까?(변찬린, 『선,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 231쪽.) * 세계를 건질 수 있는 종교와 사상이 있다면 <평화>의 두글자 뿐인데 이 사명 을 받은 민족은 세계역사를 조사해 보면 우리 민족의 풍류도밖에는 없음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변찬린,『선맥·경전 ·ᄒᆞᆫᄇᆞᆰ학』, 159쪽.) * 새 날 모든 길은 한국으로 통할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변찬린, 『선,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 229쪽.)
변찬린은 우주의 기원과 인류의 역사와 한민족의 운명을 조망하면서 사대주의와 식민주의, 즉 학문 제국주의와 화이 세계관과 그리스도교 세계관에 갇힌 낡은 하늘을 벗겨내고 ‘선맥과 풍류도의 하늘’을 연다. 그가 말하는 하늘은 푸른 하늘(sky)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인간의 자각’과 ‘마음의 열림차원’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각양각색의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존재이다. 동시에 각자의 노력여하에 따라 누구나 더 높은 하늘 즉 새로운 자각의 차원을 열 가능성이 있다.
한민족의 시작인 개천절도 천지(창조)개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과 차별을 소재로 한 다른 나라의 신화와는 달리 우리의 개벽신화는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평화의 신시공동체를 이야기한다. 고대 한국의 역사적 공간에서 전승되어 온 광명한 세계에서 펼쳐진 신시공동체의 평화의 선맥(僊/仙脈)은 역사적 문화공동체인 한국의 도맥(道脈)을 형성한다. 선맥은 자생적인 고조선 문명의 원형이다.
선맥의 풍류성은 환웅의 이화론(理化論), 원효의 화쟁론, 최치원의 포함론(包含論), 서산의 삼가론(三家論), 동학의 기화론(氣化論), 증산의 상생론(相生論), 대종교의 삼일론(三一論), 원불교의 병진론(竝進論), 김정설의 오증론(五證論), 변찬린의 장자론(長子論) 등으로 풍류적 맥락이 계승되고 있다. 이런 한민족의 영성적 정체성인 선맥의 풍류성은 유교, 불교, 도교에 정통한 최치원이 기술한「난랑비서(鸞郎碑序)」에 출전을 둔다.「난랑비서」에 의하면 ‘풍류’는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문서가 아닌 신선의 역사인 『선사(仙史)』에 기록되어 있기에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탈바꿈한다는 존재성, 공자의 가르침과 노자의 가르침과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이미 포함(包含)하고 있다는 포용성, 뭇 생명의 본성을 발현시킨다는 생명론적 공동체성, 유·불·도의 가르침이 공동체 윤리로 작동한다는 실천성 등이 공명하는 풍류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다.
풍류도의 본질은 선(僊)이다. 선맥(僊脈)인 풍류도는 대도이다. 대도 속에는 유불선의 분립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儒)니 불(佛)이니 도(道)니 하는 열교(裂敎)의 개념은 풍류도가 맥이 끊어진 이후에 나타난 비 본래적이고 제 2의적인 개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선맥·경전 ·ᄒᆞᆫᄇᆞᆰ학』, 119쪽.)
풍류도는 샤마니즘처럼 유불선을 혼합한 종교가 아니라 본래부터 풍류도는 삼교의 진리를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샤마니즘과 풍류도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선맥·경전 ·ᄒᆞᆫᄇᆞᆰ학』, 334쪽)
<선맥과 무맥>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이중적 틀 극복은 한국지성인의 절박한 과제
그러나 우리는 선맥을 잊어버린 역사에 살고 있다. 한국 종교 지평에 유교와 불교와 도교 등은 중국을 통해 전래되고, 기독교는 서구에서 전래되었다. 또한 서구 문명과 인문학의 학문적 제국주의의 위세에 눌려 발생한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이중적 틀 안에서 이를 극복하는 것은 한국 지성인의 절박한 과제이다. 이런 측면에서라도 다른 학문분야와는 달리 ‘선맥의 자생설’이 주장되는 근본 원천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는 진지하게 성찰되어야 한다.
선맥의 풍류성은 고대에는 (중국) 도가의 방사에 의해 무맥과 음양사상 등과 혼융되어 중국 도교역사의 틀 안에서 이해된다.
이로인해 선맥은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유교의 사문난적으로, 불교의 몰이해로, 과학의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그리스도교의 비신화론으로 인하여 허구의 산물로 인식된 채 왜곡되어 왔다. 현대에는 기독교 신학자에 의해 선맥의 풍류성을 오히려 무맥과 혼돈하여 한국의 문화적 원형을 오해하게 만든다.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선맥의 풍류성을 현대화하여 한민족의 사상적 맥락을 재조명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맥의 풍류성과 무맥의 무교성에 대한 유사성과 차별성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변찬린의 ‘풍류선맥정통론’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선맥과 무맥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맥은 한국 종교전통의 기층적인 영성의 본류이며, 무맥은 인류 보편적인 종교현상이다. 한국의 원형적 영성에는 두 맥이 공존하고 있지만 선맥이 결핍된 무맥만이 강조되었다.
둘째, 선맥에서는 산 자의 하늘님인 지고신(Supreme God)이 발현하고, 무맥에서는 다양한 기능신(function god)인 신령이 강신체험된다.
셋째, 선맥은 자발적이고 포용적이고 회통적이고 창발적인 개혁적인 영성인 반면 무맥은 수동적이고 혼합적이고 습합적이고 현실구복적 영성이다. 이는 포함에 대한 해석학적 차이에서 발생한다. 일부 (신)학자는 ‘포함(包含)’의 개념에 대해 외래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고 진일보한 해석을 하지만 포함에 내재된 자발성과 회통성과 창발성을 경시하여 결국에는 기독교 지상주의(포괄주의)를 지향하며 사상적 사대주의에 빠진다. 소극적으로는 외래 사상을 단순하게 수동적으로 수용하여 혼합하는 정도로 이해하면서 한국의 지성사를 외래사상의 경연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발적 식민주의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다시 말해 포함은 ‘이미 자체 내에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습합 혹은 혼합이 아닌 포월적 개념이며 다양한 사상을 창발하게 하는 해석적 기제이다.
넷째 선맥의 풍류성은 신인합발(神人合發)의 종교성이지만, 무교성은 신인합일(神人合一)의 타력적 영성이다. 풍류성은 인간에 내재된 신성이 지고신과 공명하는 현상으로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종교성이지만, 무교성은 타력적인 신령의 ‘신병(神病)’현상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다섯째, 풍류성은 선맥과 연계되어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탈바꿈을 한다. 반면 무교성은 존재론적인 인격변화 혹은 존재탈바꿈에 대한 특성은 드러내지 않고 현실조화를 추구하는 영성이다. 이것은 선맥과 무맥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여섯째, 선맥은 창조적 소수자에게 발현되는 영성이지만 무맥은 현실안주와 조화를 추구하는 대중에게 주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두 영성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어떠한 영성이 개인에게 혹은 사회풍조에 주도적으로 발현되는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일곱째 선맥과 무맥은 제도적인 조직에서 발현되는 영성이 아니라 인간에게 발현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여덟째, 무맥의 대중성이 선맥의 창발성에 의해 포용될 때에는 공존과 조화를 이루지만, 무맥의 혼합성이 강조될 때에는 선맥의 개혁적인 영성이 발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맥의 특성을 이해하고 선맥의 자리에서 무맥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한민족이 동방의 선맥 르네상스를 개막하고 새 문명인 영성시대를 여는 세계사적 사명이다.
동방학자 김범부에 의해 재발견된 풍류담론은 기독교 신학자인 유동식에 의해 대중화된다. 최영성은 풍류의 역사성과 신비성을 강조하고, 이은경은 ‘동아시아의 미학의 근원’으로 한중일 삼국의 풍류를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변찬린은 선맥의 풍류성이 은폐된 다음에 나타난 무맥의 무교성이 한국의 종교적 원형이라는 유동식의 풍류신학과는 완연히 다른 ‘풍류선맥정통론’을 주장한다. 풍류신학이 세상이 알려지지 전인 1970년대 초의 일이다.
변찬린에 의해 촉발된 선맥의 도맥은 민족종교와 기독교 신학에도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구도의 여정에서 개천한 ‘선맥과 풍류도의 하늘’을 변찬린은 이렇게 고백한다.
옛날 원효와 고운(孤雲)과 퇴계와 율곡에게 지혜를 주셨던 아버지께서 제게 번갯불을 주셨고 청자(靑磁)빛 비색(秘色)의 하늘을 향해 저를 개안시켜 주시고 본래의 대도(大道)인 풍류도(風流道)와 선맥(僊脈)의 하늘을 개천시켜 동방의 지혜(동양의 지혜가 아님) 로 『성경의 원리』라는 각서를 쓰게 했음을 감사합니다.(변찬린,『성경의 원리 下』, 573.)
산 자의 도맥, 즉 선맥의 하늘을 개천한 후 변찬린의 목소리는 직설적이고 즉답적이다. 죽음을 수차례 경험한 후 역사를 도피하지 않고 역사의 광장에서 궁극을 노래한다. 선맥은 한국인에게 내장되어 있는 영성의 씨앗이다.
필자 이호재(전 성균관대학교 교수)의 주요 저서로 〈한밝 변찬린 : 한국종교사상가〉 〈선맥과 풍류해석학으로 본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 〈포스트종교운동: 자본신앙과 건물종교를 넘어〉 등을 비롯하여 중국 종교와 한국 종교에 대한 국내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이번 연재는 14명 철학자들을 시대별로 정리한 ‘한국철학 다시읽기-인물로 보는 한국철학사’(모시는사람들 刊)에 발표한 ‘변찬린-선맥과 풍류도의 하늘을 열다’ 편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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