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종교이야기
정감 넘치는 한 친구가 나와 다른 친구를 술자리에 초대해 김훈의 신간 ‘허송세월’(나남 刊)을 건네주었다. 평생 독서와 거리를 두었던 친구는 그날 술자리 파한 뒤 취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바로 읽기 시작해 330쪽의 책을 곧 돌파했다. 8순이 가까워진 저자의 일상생활과 상념들을 담은 44편의 에세이 내용이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모양이다.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교회 성가대와 국내 유수 합창단의 최고령 단원으로 활동하는 그는 아직도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교회 찬양대의 합창을 유튜브에 올리는 등 바쁜 생활을 보낸다. 아랍어를 전공해 10년 가까이 사우디에 근무했고 이후 대기업의 간부로 교회와 음악 이외엔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는 일생을 보냈으니 독서는 사치와 같았고, 그러다보니 책은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허송세월’을 독파한 다음, “이제 독서의 묘미를 느낄수 있을 것 같다”며 다른 책의 추천을 넌지시 요청했다. 반가웠다. 인생을 마무리할 취미로서 독서만한 것이 없다는 내 생각에 공감해주는 듯했다. ‘허송세월’을 계기로 독서에 입문한 그가 독서의 맛에 빠질 수 있는 징검다리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크리스찬 신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일생을 아랍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그를 위해 유용한 책은 무엇일까를 고심하며 도서관의 책 목록과 서가를 둘러보았다. 나름대로 그의 일생을 정리하는 의미를 주며 흥미도 유발할 수 있는 입문서를 찾느라 신경을 썼다. 물론 수많은 책들 가운데 내 취향과 안목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느꼈지만 노력을 했다.
수년동안 아크릴화를 그려왔던 아내가 근래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해 책을 대신 대여해줄 때도 그랬다. 아크릴화와 수채화는 같은 기법 같지만 건조 시간, 색상효과, 표현 효과 등에서 각각 장단점과 특징을 갖고 있어 새로 수채화를 시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내 딴에는 활자엔 눈에 피로가 오는 아내를 배려해 ‘수채화:기초부터 풍경까지’ ‘수채와 캘리그라피’ 등 화보 위주의 대형 판형의 책을 골랐다. 그러나 내 의도와는 다르게 그는 대여기간 2주인 그 책들을 이틀만에 반납했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그 정도의 수채화 지식은 익혔던 것이다. 내 성의를 무시하지 않기 위해 다 읽어 봤다고 했으나 그에겐 전혀 와닿지 않는 책이었나보다. 엉뚱하게 짚고, 확신하는 내 안목과 생각, 생활의 한계를 재삼 절감했다.
‘허송세월’을 보는 나와 친구의 시각 역시 달랐다. 책을 독파한 친구는 김훈의 8순에 들어서며 농익은 정서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훈이 70 들어서 펴낸 ‘연필로 쓰기’ (문학동네)를 통해 그의 문체와 감성을 맛본 나로선 이번 책이 루틴하게 느껴져 하루 3-4편의 산문을 나눠 읽는데 그쳤다. 같은 책을 놓고 나와 친구의 평가와 느낌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서로 다른 반응이었다. 그러나 누가 옳고 그르다, 좋다 나쁘다고 할 성질이 아니며 둘 다 틀리지 않는 솔직한 생각이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맹인은 코끼리가 기둥 같다고 했고, 꼬리를 만진 맹인은 밧줄과 같다고 했다. 코를 만진 맹인은 나뭇가지, 귀를 더듬은 맹인은 부채, 배를 만진 맹인은 벽, 상아를 만진 맹인은 파이프와 같다고 말했다.”
모두 옳았다. 다만 모두가 전체 아닌 부분만 파악했다는 이 이야기는 근,현대의 우화가 아니다. 기원전 6~5세기 인도의 종교 자이나교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부정하며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자이나교는 다양함을 존중하는 20세기 태동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정신과 같다. 모든 종교가, 특히 일신교와 계시종교들이 자신들의 종교가 절대적으로 진리인 결론이라며 확신하고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나온 에큐메니컬 운동의 효시라고 하겠다. 자신의 신앙이 최고의 가치라며 피를 부르고 전쟁의 참혹함으로 이어갔던 종교의 역사에서 이러한 자이나교의 에큐메니컬적 신앙이 토템이즘, 원시신앙이 자리잡았던 2600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는게 놀랍다. 자기가 보는 것이 절대적이라 하지 않고 단지 한 시각일 뿐이라는 겸손한 신앙이 경이롭고 오늘날에도 새롭게 다가온다.
종교의 역사는 이단의 역사다. 예언자, 선지자, 계시받은자에 의해 새로운 종교와 분파가 생겨날 때는 기존 종교와 분파는 새로 생겨난 이단에 대해 피와 분쟁, 전쟁을 일으켰다. 유대교는 그리스도교를 이단으로, 가톨릭교회는 개신교를 이단으로, 그리고 새로운 개신교파가 생겨날때마다 기존 교파들은 이단으로 몰아세우며 핍박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유아독존적 종교는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종교를 탄생시키며, 성장해왔다.
급기야 그 반작용으로 20세기엔 니체의 ‘신은 죽었다’, 마르크스의 ‘종교은 마약이다’로 시작된 종교에 대한 부정은 21세기 들어선 '신은 없었고, 없으며, 없을 것이다.'라는 무신론자 선언들이 쏟아졌다. 현대 무신론의 수호자로 일컫는 4인의 기사가 기존 종교인들에게 악마같은 이단 취급을 받지만 현대인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그들은 망상적이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종교를 거부하며 모든 현상은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와 이성으로 충분히 납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크리스토퍼 히친스, ‘주문을 깨다’의 대니얼 데닛, ‘종교의 종말’의 샘 해리스 등 4인은 각각 전투적 무신론자, 성역파괴 무신론자, 전략적 무신론자, 직설적 무신론자로 불리며 종교의 망상과 폐단에 대해 분노하는데, 종교에 회의하고 반목하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흥분하게 한다. 그들 4인이 한데 모여 과학과 종교에 관한 지적 탐구를 한 대담내용 ‘신 없음의 과학’(김영사)은 국내에도 소개되어 관심을 모았다.
그들은 현재 정통종교로 거론되는 모든 종교가 세월이 지나면 원시 시대 토속신앙, 토템신앙 등처럼 모두 환상과 망상으로 변할 것이란 주장을 펼치는 듯 하는데 기존 종교에 반목하는 이들에겐 통쾌함까지 제공한다.
자이나교의 교리에서 본다면 이들 4인의 무신론 수호자와 이를 종교처럼 추종, 숭배하는 사람들 역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장님 코끼기 만지기’ 식의 확신이라 할 것 같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독서와 종교를 생각하며 나는 친구에게 추천하는 책으로 ‘세계종교의 역사’(little history of religion. 소소 刊)를 골랐다.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에딘버러 주교인 리처드 할러웨이가 저술한 이 책은 기독교 성직자, 학자이면서도 개별 종교가 아니라, 종교 그 자체의 역사를 균형을 갖춰 객관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인류 최초의 종교인 힌두교로 첫 장을 시작한 이 책은 유대교,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불교 등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 신을 거론하지 않고 생활철학을 설파한세속적 종교 유교와 노자 등도 정리해 놓았다.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면서도 기독교와 대척점에 있는 이슬람교까지도 담담하게 서술했다. 이슬람의 분파와 폭력, 다툼을 다뤘지만 기독교의 분파와 폭력도 같은 비중으로 이야기했다.
일반 성직자들이 자기 종교와 분파에 매몰돼 개별종교를 찬양하거나, 무신론자들이 펼치는 종교에 대한 회의와 분노를 각각 접해 왔던 나로선 내 종교안목을 확 트이게 한 최고의 종교입문서였다. 또한 입문서가 가장 쓰기 힘들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할러웨이는 세계종교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통달한 듯 재미있고 쉽게 풀이하고 옛날 이야기처럼 구수하게 전달했다. 방대한 인류 역사의 종교를 여행안내서같이 만들어 놓은 그의 안목과 성찰에 감탄했다. 재치있는 표현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을 툭 던져 놓을 때는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독서 입문자에게 이만한 책이 있을까 싶었다. 더욱이 친구는 종교와 분파의 폐단을 전혀 개의치 않는 성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이런 성격의 책은 독서 입문하는 그를 안내하는데 최고의 명저라는 뿌듯함이 생겨났다. 그는 직업 생활인으로써 펑생 아랍과 관계해 왔는데 이번 기회에 기독교 교세 이상으로 커진 이슬람과 아랍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는 계기가 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더욱이 개신교인인 그에게 아브라함. 모세부터 유대교, 가톨릭 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의 생성과 역사를 개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고 싶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개신교가 성공회를 비롯해 종말론 신앙인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제칠일 예수재림파, 퀘이커교, 과학교인 사이언톨로지, 통일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개괄해 놓음으로서 흥미와 지식을 자극해 줄게 분명했다. 또한 과학에 저항하는 근본주의 신앙의 대두와 종교 화합과 협동을 이루자는 에큐메니컬 운동까지 전달해 놓은 매력에 빠질 것이라고 짐작했다. 아마도 그러한 이단 역사의 흐름을 알다 보면 통일교 뿐 아니라 천부교와 신앙촌, 하나님의교회, 신천지와 JMS 등 국내 신흥종교에도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들여다 보게 될 것이란 상상도 했다. 나이들어서 관심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독서는 정말 즐거운 취향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나 나의 책 추천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내 안목과 생각의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또 다시 해보았다. 친구와 내가 ‘허송세월’을 읽으며 각기 감흥을 달리했듯이 내 딴에 고심해서 고른 책, 40개 챕터 442쪽 ‘세계종교의 역사’에서 흡수 소화하는 내용이 확연하게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인간에게 저주를 내려서 인간으로 하여금 폭력을 사용하라고 명령한 것은 신이였기 때문에 인간을 그런 신의 저주로부터 구해 내는 최선의 방법은 신을 없애버리는 것”(챕터 39 ‘성스러운 전쟁’ 中) 이라는 재치있는 단편적 언급이 나에겐 더 와 닿는다. 4인의 무신론 수호자의 비판과 분노보다 더 무게와 힘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 친구는 책 말미 결론에 나오는 “종교는 세속적 인본주의보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종교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공연이며, 현재 가까이 있는 예배장소에서 진행 중이다”라는 책 말미의 결론에 귀기울이며 자신의 신앙을 돈독히 할 것이다.
또한 ‘종교가 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적대자‘는 언급에 대해서 나는 종교의 부패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해석하는 반면 그는 일부 종교의 반성을 촉구하는 발언으로 여길 것이다.
한편 할러웨리는 공자 등 동양종교를 해설하면서 ’여성은 남성 안에서 발견되고 남성은 여성 안에서 발견된다. 친구는 적 안에 있고 적은 친구 안에 있다. 나의 종교는 여러분의 종교 안에서 여러분의 종교는 나의 종교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자이나교의 교리와 통하는 주장이다. 앞에 거론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도 할어웨이는 책 서두에 설명했다. 더욱이 그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나는 2600년전 자이나의 교리가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친구가 이를 그냥 지나쳐 읽을 것인지, 다른 시각으로 평가할 것인지 궁금하다.
“인간은 완전히 눈이 먼 것은 아니지만, 단지 하나의 각도에서만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기가 보는 것이 전체 그림이라고 주장하거나 다른 사람들도 자기 방식대로 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다.”(챕터 6 ’아무것도 해치지 말라‘ 中)
친구가 ’세계종교의 역사‘를 읽은 다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각기 다른 ’장님 코끼리 만지기’ 式 종교와 독서 취향이 흥미있을 것 같다.
각자 다리, 꼬리, 코, 귀, 배, 상아를 만진 소감을 단편적으로 말해도 다 그른게 아니게 다 옳다. 올곧고 성실한 친구가 전해주는 소감을 들으며 내가 못 본 것을 봄으로써 전체적 윤곽을 조금 알아간다는 기쁨이 생길 것 같다. 친구도 내 판단을 엿보며 부정이나 비판 아닌 서로 다름과 조화를 느끼고 존중하며 즐거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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