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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21세기 무속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中)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2/10/11 [06:02]
무당의 입무과정(入巫過程), 굿의 행태와 기능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21세기 무속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中)

무당의 입무과정(入巫過程), 굿의 행태와 기능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22/10/11 [06:02]

<연재순서>

() 무당과 굿의 정의-성직자, 그것도 하늘의 위엄을 통해 신탁을 전하는 대리자

() 무당의 입무과정(入巫過程), 굿의 행태와 기능

() 무속에서의 신과 의례. 그리고 기독교 불교에서의 무속적 요소

 

무당의 입무과정(入巫過程), 굿의 행태와 기능

 

무당의 기능과 관련, 러시아의 학자 반자로프가 세가지를 들고 있다. 즉 예언자로서의 기능과 무의(巫醫)로서의 기능, 사제자로서의 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병을 고치는 기능은 의학의 발달과 의료보험제도의 정착으로 병원문턱이 낮아진 관계로 소멸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무병이라고 하는 정신과적인 외상치료에는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 마마신이 물러가기를 비는 마마 배송굿. 국립민속박물관    

 

과거 굿거리 12마당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던 마마배송굿이란 굿은 얼마 전까지 보던 비디오에 늘 등장하던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마마 천연두다. 병원치료, 예방의학의 발달로 예방 혹은 치료의 무속적 기능이 사라지면서 굿 거리에서도 사라진 경우다. 그 외 예언, 굿 의례는 현존하고 있다.

 

무당이 되는 과정으로는 흔히 입무과정(入巫過程)이라고 부른다. 평범했던 사람이 어느날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을 한다. 전국 유명한 대학병원을 찾아다녀도 알 수 없다. 마지막 물에 빠진 사람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집을 찾아 신병임을 진단받고 날을 잡아 신내림굿을 한다.

 

보통 일반 사람 그것도 병자가 아닌 정상인 사람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중에 신에 의한 것 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신이 씌여서라는 진단을 받는다. 신의 뜻임을 알고 체념을 한다. 신굿을 하고 그때부터 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예언능력이 생긴다.

 

첫 번째 공수(神託)<말문>이라고 한다. <>은 신어(神語)를 뜻하고, <>은 시작을 뜻한다. 처음으로 공수를 하는 것을 말문이 연다라고 한다. 이 말문이 곧 예언이고 점사다. 이 신에 의한 점복의 기능으로써 무당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무당이 되는 것은 아니고, 보다 전문적인 의례의 양식을 배우고 사회적 관계를 확대하는 노력으로 완전한 무당이 된다.

 

이 완전한 무당을 <큰 무당> 또는 <단골무당>, 익숙한 무당이라는 뜻에 <숙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새로 무당이 된 아직 미숙한 무당을 <선무당>이라 한다. 선무당은 점복만을 하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다 하여 <돌무당>, <돌팔이 무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 선무당이란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대무당, 큰 무당도 처음에는 선무당에서 시작되었듯 노대통령도 처음에는 많은 어설픈 모습이 보여 선무당이란 말을 들었지만 임기는 무사히 마쳤다.

 

굿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일이 생겼을 경우에만 하는 것이다. 집안에 흉사가 끊이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마다 안되면 무당을 찾는다. 그러면 무당은 신령에게 물어본다. 점을 치는 것이다. 무당이 점쳐 본 결과 사안이 중해서 굿을 해야 한다는 처방이 나올 수 있다. 신령의 도움이 없이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괘가 나오면 그때 굿을 하게 된다.

 

무당의 경우 굿을 함부로 권하지 못한다. 굿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게 때문이다. 굿은 무당 혼자 수고비로 챙기지 않는다. 굿을 하는 과정에서 도와준 사람들에게도 일정부분 나누게 된다. 악사, 보조 무당, 과일값 그리고 굿 당비, 굿당에서 일을 봐주는 사람 등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굿이란 의례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굿은 언제하는가 - 해가 지면 시작해서 밤새 놀고 동이 트면 끝났다

 

굿은 신명에 따른 것이다. 신명이 따르지 않으면 몇 시간씩 춤을 출 수 없다. 망아적 현상이라고도 한다. 비단 무속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모두 포함되는 문화현상이며 DNA. 우리 사회 관광버스 춤으로 클론의 궁따리 사바라로 이어졌다. 굿판에 상차리고 무당이 춤을 추면 그 신명에 주변사람들은 장단을 맞춘다.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대형스크린을 보고 응원을 주도하는 사람의 지휘에 따라 주변사람들이 호응하는 모습이 너무 닮은 꼴이다. 응원문화로 완전신명 신바람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이다.

▲ 인왕산 국사당은 조선시대 남산에 있던 것이 일제에 의해 옮겨진 것인데 그곳에서는 저녁 6시까지 굿을 끝내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주변에 20여 사찰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굿은 보통 해가 지면 시작해서 밤새 놀고 동이 트면 끝났다고 한다. 물론 마을굿의 한 형태인 별신굿처럼 몇 년만에 한 번 크게하는 굿은 며칠동안 놀았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사회의 사이클에 맞추느라 하는 수 없이 아침 일찍 시작해서 대강대강 한다. 굿당이 외진 곳에 있지만 주변민원을 무시할 수 없다. 실례로 인왕산 국사당은 조선시대 남산에 있던 것이 일제에 의해 옮겨진 것인데 그곳에서는 저녁 6시까지 굿을 끝내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주변에 20여 사찰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 사용하던 도로를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통행을 방해하는 등 주민과 마찰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늦은 오후에는 끝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굿은 왜 밤에 했던 것일까? 거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지만 굿을 하는 목적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굿에서는 굿을 청한 사람이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그것이 여의치않아 문명의 이기인 비디오로 촬영, 재가집에 전달하고 있다.

 

굿의 청하는 사람들-너무 개인적이고 기복적이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다뤄

 

굿을 할 때는 아주 원초적이고 개인적인 이유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에게 애인이 생겨 그 여자를 떼어달라고 할 수도 있고 남편회사 부도를 막아달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은 공개적으로 대놓고 대낮에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너무 개인적이고 기복적이기 때문이다. 밤은 낮보다 어둡기 때문에 감성이 풍부하고 지극히 사적인 시간, 굳이 말한다면 굿은 음성적으로 다루는 것 같다. 게다가 신령들과의 조우는 귀신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밤에 하는 게 제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무당들의 기도 터를 가보면 음침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많다.

 

무속인의 수는 제일 못 믿을 숫자다. 순수 무속인의 숫자는 극히 소수다. 대한민국 정부 조직법상 문화관광부에 종무실이 있고 불교를 비롯 기독교, 천주교, 민족종교 등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들 종교를 직간접으로 행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속은 정확하게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방치 내지는 무관심 속에 놓여있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파악해 놓지 못하고 있다. 무속단체에서 주장하는 숫자를 놓고 어림짐작을 하는 형편이다. 승려증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속단체에 가입 후 무속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불교종단에서는 승려에 속하는 숫자다. 명확한 기준이 없이 막연하게 그것도 선거용 숫자에 불과한 무속단체의 회원 수를 액면 그대로 믿고 일년에 점치는 가격으로 얼마가 사용된다는 기사는 전형적인 엉터리 기사이며 오보다. 

 

무속만의 특징-세계종교사에 사제자는 남성, 무속 사제자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 8:2

 

세계종교사에 사제자는 남성이다. 천주교의 경우처럼 여성은 사제자인 신부를 돕는 보조자이거나 유교의 예처럼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속은 여성이 중심이다. 통계상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8:2의 성비를 보이고 있다. 부인이 무당인 경우 남편은 거의 직업이 없는 상태다. 무당남편에 대해 기록에는,

 

그녀의 굿 수입으로 한잔의 탁주나 얻어 마시려는 목적으로 붙어있는 놀기좋아하는 남성(무라야마 지존, 조선의 무격)’

 

남편은 대부분 아내의 굿 수입으로 한잔의 탁주나 얻어 마시려는 놀기좋아하는 무능한 패거리로서 아내에 기생하는 존재....세속에서는 빈둥빈둥 놀기만 하고 게으른 남자를 무당사위라고 한다.(아키바다카시, 춤추는 무당과 춤추지않는 무당)

 

무당서방; 무당의 남편, 공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웃는 말’(민속서관)

 

남자가 놀면 기생의 서방이냐 만신의 서방이냐’(김인회, 고양시 민속대관) 등이 있다.

 

굿은 춤과 노래가 곁들여진다. 노래와 춤으로 신을 부르고 들어온 신을 또 노래와 춤으로 즐겁게 해주고 신이 갈 때도 춤과 노래로 즐겁게 보낸다. 굿의 하이라이트는 무감이란 행사다. (예전에는 굿을 청한 사람 집에서 주로 굿을 했다) 굿을 부탁한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이 무당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순서를 말한다.

 

이런 순서는 다른 종교의 의례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예를 들어 카톨릭의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다말고 신도에게 신부복을 입히고 미사를 대신 집전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목사, 승려가 예배, 법회 도중 신자들에게 일정부분 의식을 맡기지 않는다. 무당들에게 사제와 신자라는 이원론적인 구분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까지 신도들과 함께 나누려는 신실한 바람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굿과 관련된 옛 이야기 중에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 굿 못한다는 시어머니 입장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다. 며느리가 춤출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무감 때문이다. 여럿이 춤추게 되니 무당이 어디 있는지 모시던 신령은 어디 있는지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굿을 난장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굿 속에서는 이렇게 한국인의 신명과 신들림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러나 굿판이 이렇게 시끄러운 것만 아니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마지막에는 뒷전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과장에서는 굿을 하는 과정에서 제외되고 소외된 잡신들을 불러 먹이는 일이 있다. 풀어 먹인다고 하는데 자신들과 인연이 없는 잡귀도 홀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무속의 특징이다. 

 

조선조 성리학자들의 탄압 속에 살아남은 무속

 

무속은 조선 사회가 지탱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부단히도 무속을 탄압했다. 성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무교는 요사스러운 가르침 혹은 음사(淫事)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성리학이라는 학문은 이() 혹은 원리를 가장 중요시 하는 학문이다. ‘라닌 것은 과 상치되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의 목표는 한마디로 표현할 때 보통 기질지성을 누르고 본연지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때 말하는 기질지성은 바로 인간의 감정인 칠정(七情)을 말하고 본연지성이란 인간 본래의 도덕심인 사단(四端)을 말한다. 이러한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무교의 모든 것이 못마땅할 게 틀림없다. 무교의 의례는 성리학자들이 가장꺼리는 시끄러운 음악에 남녀가 함께 추는 춤, 복만 비는 행위가 못마땅 했을 것이다.

 

조선조에 무속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유교()이 관장 할 수 없는 삶의 부분이 그다지 넓지 못했던 사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특히 인간의 죽음 부분으로 가면 유교가 담당할 수 있는 범위는 작아진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삶의 국면에서 유교가 주로 담당하는 분야는 성년이 되어 자식을 두고 정상적으로 죽은 사람의 죽음이다. 그리고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는 남성을 중심으로 강조했다. 그러니 성년이 되지 않은 채로 죽던가 결혼도 못하고 죽은 어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교 체제에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교의 제사는 후사가 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만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아들이나 딸이 어려서 죽었다고 하자. 그 아들이나 딸을 제사상에 모셔 놓고 부모들이 절을 한다는 것은 유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굿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전통 사회에서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영혼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한다. 한을 품고 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한을 풀어 줘야 하는데 유교에서는 이런 영혼의 한을 어떻게 풀어 줄지에 대해서는 어떤 방도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이런 부분을 무속은 담당하기 때문에 무속이 조선의 혹독한 탄압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유교의 제례는 남성 중심으로 운용되었다. 제사는 말할 것도 없고 상례에서도 유교는 철저하게 남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가령 여자가 제사드릴 수 있는 대상은 남편의 조상들 뿐이지 자기 친정의 조상들은 어쩔 수 없이 제외된다. 이것은 상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가 봉사해야 하는 장례식은 남편 조상의 장례이지 자기 부모의 장례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자기 부모의 장례에 참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자신이 주도해서 부모의 장례식을 거행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남자 형제들이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속은 이런 여성들의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주고 있다. 자신들의 친정 부모를 위해서 오구굿이란 형식을 취해 죽은 부모의 한을 풀고 편안하게 저승으로 보내드리는 의례이다. 아울러 어린 자손은 죽음에서도 그들을 좋은 곳으로 천도해주는 진오기 굿이 있으며 자손이 없는 사람들은 생전에 자신을 위한 굿을 할 수 있는것도 타 종교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을 불교의 신격을 받아들이므로 자신들의 위상을 높였다는 것이다.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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