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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쫓는 종교

이옥용 | 기사입력 2026/05/01 [09:02]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사람이다

기적을 쫓는 종교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옥용 | 입력 : 2026/05/01 [09:02]

 

종교는 오래전부터 기적을 말해 왔다. 병이 낫고, 미래를 예견하며, 간절한 기도가 운명을 바꾼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냉정하게 되물어야 한다.

 

기적이 그토록 흔했다면, 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으며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는가.”

 

필자는 종교 현장에서 소위 신통력과 기적을 내세우는 이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초면인 사람의 과거를 꿰뚫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쉽게 이성을 잃는다.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 앞에서 경외심은 곧 맹목적 신뢰로 바뀐다.

 

기적이 사람을 모으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의 불안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 그 틈을 파고들 때 기적은 강력한 힘을 갖는다. 사람은 대체적으로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고치려고 하지 않고 남을 탓하고 기적으로 고치려고 하는 경향을 일부 종교가 부추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기적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정말 달라졌는가. 기적은 때로 강렬한 자극이 된다. 한 번 경험하면 더 큰 것을 갈망하게 만든다. 그 사이에서 정작 중요한 일,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일은 미뤄진다. 변화는 고통스럽지만, 기적은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라는 좁은 길보다 기적이라는 지름길을 선택한다. 오늘날 일부 종교 현장에서, 사람을 깨우는 가르침보다 기적을 보여주는 일이 더 앞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통력이 종교의 중심이 될 때

 

신통력이 중심이 되는 순간, 성찰은 사라지고 의존만 남는다. 능력을 가진 이는 절대화되고, 질문은 배신이 되며, 비판은 불신으로 취급된다. 종교가 권력 구조로 변질되는 지점이다.

 

필자는 과거와 현재 많은 기적의 종말을 보아왔다. 계시와 영적 권위를 내세워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이들의 마지막은 대부분 평온하지 않았다. 신통력은 잠시 사람을 매혹시킬 수는 있지만, 삶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진정한 종교적 체험은 욕망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과정이다.

 

위대한 성자들도 이 길을 경계했다. 석가모니는 기적을 드러내는 것을 금했고, 예수는 표적만을 구하는 태도를 꾸짖었다. 그들이 강조한 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삶의 변화였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사람이다

 

종교의 가치는 기적의 횟수가 아니라 사람의 변화로 판단되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정직해졌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따뜻해졌는가. 그것이 기준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기적 같은 순간을 기다린다.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고, 삶이 확 달라지는 순간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말 중요한 건 그 순간이 지나간 다음이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그걸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보다 위대한 것은 광야를 걸어가는 인내다. 병이 낫는 것보다 더 깊은 기적은, 다시 얻은 삶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다. 땅 위를 걸으며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더 큰 기적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초자연적 사건이 아니다. 스스로를 변화시킨 사람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기적은 거창하지 않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겠다는 결단, 그리고 오늘을 정성스럽게 살아내는 태도, 우리가 찾아야 할 신통력은 병을 낫게하고 미래를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삶을 사랑으로 살아내는 힘이다. 그것이 기적보다 더 기적 같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다.

 

▲ 이옥용 CRS 매일종교신문 고문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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