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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수용된 인도 부파불교

보검 스님 | 기사입력 2024/12/30 [08:27]
서북인도 중앙아시아의 법장부파 중국 도래

중국에 수용된 인도 부파불교

서북인도 중앙아시아의 법장부파 중국 도래

보검 스님 | 입력 : 2024/12/30 [08:27]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105)

 

한 종교가 다른 나라에 또는 다른 지역에 전파될 때, 어떤 형태의 종파가 전해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불교라는 종교가 인도 땅에서 생겨나서 진행되는 동안, 불교는 많은 변화가 있게 된다. 그것은 석가모니라는 교주 시대가 지나면서 제자들의 시대가 왔고, 직계 제자들의 시대가 지나면서 손자 세대 그리고 증손자 고손자 세대에 이르면서 불교 승단은 변화와 분열이 있게 됐다. 이러한 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 시대라고 정의하고 있다. 

 

▲ 중국의 현장 스님이 7세기에 인도를 방문했을 당시 남아시아 주요 불교 학파의 지리적 중심지를 나타낸 지도인데 회색은 담마굽타카· 빨간색: 사르바스티바딘 노란색: 마하 상기카· 초록색: 풋갈라 바딘· 주황색: 비와자바딘.  © CRS NEWS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는 시기와 과정에서 있어서 불교를 전달하는 승려들은 주로 담마굽타카(법장부파) 비구들이 도맡았다. 중국에 불교가 전파될 무렵에 인도에는 몇 개의 대표적 부파가 있었다. 인도 북서부에는 담마굽타카(법장부파)가 있었으며, 동부와 서부와 동부 연안에는 마하샤사카(화지부파)가 있었으며, 카샤피야(음광부파)와 스라바스티바딘(설일체유부파)및 마하상기카(대중부) 등이 인도 아대륙에 분포하고 있었다.

 

중국 초기 불교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부파는 담마굽타카(법장부파)이다. 담마굽타카(법장부파)는 다른 어떤 부()파보다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지역에 집중하고 있었다. 동시에 중국에 전파된 불교도 담마굽타카파 비구들에 의해서였다. 중요한 것은 중국에 불교 승단이 형성될 때, 법장부파(담마굽타카)의 율장(律藏)과 계율을 수용했다. 

 

▲ 영국의 인도학자(불교학) 앤서니 케네디 워더( Anthony Kennedy Warder, 1924년~ 2013년).  © CRS NEWS

 

영국의 인도학자(불교학) 앤서니 케네디 워더( Anthony Kennedy Warder, 1924~ 2013)의 저작 인도불교(Indian Buddhism,1970)가 크게 참고가 된다. 워더 교수는 담마굽타카(법장부파) 부파가 초기 시대에 중국불교를 효과적으로 확립한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썼다.

 

중앙아시아에 자리를 잡은 최초의 불교도는 담마굽타카 비구들이었다. 그들은 인도 아파란타에서 북서쪽인 이란으로, 그리고 동시에 오드디야나 간다라 북쪽의 스왓계곡으로, 그들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가 되며, 무역로를 따라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파르티아까지 서쪽으로 자리를 잡은 후, 그들은 아시아의 동서축인 실크 루트를 따라 동쪽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서기 2세기와 3세기에 효과적으로 불교를 확립했다. 이밖에도 마히샤사카(화지부)와 카샤피야(음광부)는 그들을 따라 아시아를 가로질러 중국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중국불교의 초기 시대에는 담마굽타카(법장부파)가 주요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부파를 구성했으며, 나중에도 그들의 율장(비나야)이 중국불교 승단의 수행의 기초로 남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 인도 북서부 간다라에서 불교가 스왓 계곡의 강을 건너 파미르 고원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 오아시스 나라들로 전파됐다.  © CRS NEWS

 

기원전 305, 마우리아 왕조는 그리스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이곳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아소카 대왕의 통치 기간 동안 불교가 스왓 계곡에 전래되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탑이 세워졌다. 마우리아의 통치가 붕괴된 후, 스왓은 그리스-박트리아인의 지배를 받았고, 잠시동안 중앙아시아 대초원의 스키타이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 인도 북서부 간다라에서 불교가 스왓 계곡의 강을 건너 파미르 고원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 오아시스 나라들로 전파됐다.  © CRS NEWS

 

간다라 지역은 페샤와르 계곡과 인접한 스왓, 부네르, 디르, 바자우르의 구릉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리스-박트리아의 통치에서 벗어나 인도-그리스 왕국으로서의 독립을 수립했다. 가장 유명한 인도-그리스 왕인 메난더 1세가 기원전 140년경에 죽은 후, 이 지역은 인도-스키타이인에게 침략당했고, 서기 50년경에는 페르시아 파르티아 제국이 침략했다. 파르티아인의 도래로 불교 이미지(불상)와 강력한 헬레니즘-그리스 영향을 결합한 종합 예술 형태인 그리스-불교 예술의 오랜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 예술 형태는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인간 형태로 부처를 처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파키스탄의 스왓계곡에 위치한 암룩다라 사리탑.  © CRS NEWS

 

파르티아인들은 페샤와르 계곡에 기반을 둔 쿠샨족에 의해 스왓에서 축출되었다. 쿠샨 왕조는 많은 사람들이 간다라의 황금기로 여기는 시기를 시작했다. 가장 위대한 쿠샨 왕인 카니슈카 치세에 스왓은 불교 예술 생산의 중요한 지역이 되었고, 이 지역에 수많은 불교 사당이 지어졌다. 대승불교의 후원자로서 새로운 불교 사리탑이 지어지고 오래된 사리탑은 확장되었다. 서기 403년경에 이 계곡을 방문한 중국 순례자 법현은 500개의 수도원을 언급했다.

 

암룩다라 사리탑은 파키스탄의 스왓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암룩다라에 있는 간다라 문명의 일부이다. 이 사리탑은 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리탑은 1926년 헝가리계 영국 고고학자 오렐 슈타인 경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사리탑의 기초는 두께가 약 4m인 정사각형 받침대이다. 그 위에 높이 7m, 지름 21m의 반구형 돔이 얹혀 있어 주변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스왓에서 가장 훌륭한 사리탑이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보물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손상되고 있다.

  

▲ 파키스탄의 스왓 계곡의 네모그램 스투파.  © CRS NEWS

 

네모그램 스투파는 파키스탄의 스왓강 오른쪽 기슭에 있는 사이 두 샤리프에서 서쪽으로 45km , 비르코트 에서 2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지는 1966년에 발견되어 1967~68년에 발굴되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보검스님이 인도 아잔타 담마찰 야단법석에 참석.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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