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라지바의 중론은 현재까지도 유효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90)
대개 일반적으로 한 종교의 교리는 진화하고 발전한다. 교주가 처음 했던 말씀은 시간이 지나면서 체계화되는 것이다. 한 종교의 창시자가 처음엔 다소 어눌하게 말했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질서정연하게 이론화 논리화 된다. 지금의 시대적 관점에서 재해석되는 것이다. 수천 년 전에 하신 말씀이 지금의 시대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면 좋겠지만, 결코 바른 이해와 해석이 되지 않는다. 불교의 경우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쿠마라지바는 부처님 탄생이후, 거의 8-9백 년이 지난 세대이다. 대승불교의 최고 이론가인 나가르주나(용수)는 쿠마라지바보다 3백 년 일찍 태어난 분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잘 해석하여 체계화한 분이 나가르주나이고, 나가르주나의 이론을 가장 잘 이해하여 중국에 전파해 준 분이 바로 쿠마라지바이다. 용수보살의 사상은 조금 지루하고 난해하지만, 이 고개를 넘어여 중국불교를 이해하게 된다.
쿠마라지바의 불경 번역은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불교사에서 길이 남을 공적을 남긴 것이다. 쿠미라지바는 다음과 같은 경전을 한역하였다. 《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 3권, 《불설아미타경(阿彌陀經)》 1권,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27권(30권),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 《유마경(維摩經)》 3권, 《대지도론(大智度論)》 100권, 《중론(中論)》4권 등이다.
일부 경전에서 산스크리트어 원전에는 없는 쿠마라지바 본인의 창작(해당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이나 의역(疑譯)으로 의심되는 부분도 있으나, 그의 번역 불경이 후대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 문화권에 퍼진 불교 용어, 예를 들어 극락(極樂)이라는 단어는 쿠마라지바가 번역한 그대로 퍼져 쓰이고 있으며,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유명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문구도 쿠마라지바에게서 나온 것이다. 당(唐)의 현장에 의해 산스크리트어 불경이 중국에 수입되고 번역된 뒤에도 <신역>(新譯)이라 불린 현장의 번역에 대해 쿠마라지바의 번역은 <구역>(舊譯)이라 불리며 존중되었다(쿠마라지바 이전의 번역은 고역古訳이라 불린다).
그러면 왜 나가르주나(용수)의 《중론》이 ‘유명한가’이다. 《중론(中論)》(산스크리트어: Madhyamaka-śāstra 마드야마카 사스트라)은 용수가 만든 449구의 간결한 게송인 《중송(中頌)》(산스크리트어: Madhyamaka-kārikā 마드야마카 카리카)—《중관론송(中觀論頌)》이라고도 한다—에 청목(靑目: 4세기 전반)이 주석을 단 인도 불교의 논서이다. 《중관론(中觀論)》이라고도 한다. 중론은 4권으로 되어 있다. 구마라즙이 다소 수정을 가해 한역하였다. 《중론》에 포함된 청목의 주석은 《중송》의 여러 주석들 중의 하나이다. 《중송》은 용수의 초기 작품으로서 초기 및 중기 대승불교 사상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그 후의 대승불교의 사상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중론》은 《반야경》에 바탕을 둔 유무2변(有無二邊)을 초월한 중도(中道)로서의 대승공관(大乘空觀)의 입장에서 원시불교 이래의 연기설(緣起說)에 새로운 해석을 내려, 모든 것이 연기(緣起)·무자성(無自性)·공(空)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종래의 모든 불교 학설을 종합적으로 비판하면서 불교의 이론과 실천을 일관하는 입장을 설정하고 있으며 원시불교의 근본정신을 재조명하여 되살리고 있다.
중관파(中觀派) 또는 중관학파(中觀學派,madhyamika)는 용수(龍樹: 150~250)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인도 대승불교의 종파이다. 중관파는 유식유가행파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이대 조류를 이루었다. 중국 불교의 삼론종은 인도 불교의 중관파에 대한 중국 측 명칭에 해당한다.
고타마 붓다의 근본사상인 연기설(緣起說)을 공의 입장에서 해명하고 공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기초지은 용수(龍樹: 150~250)는 후대의 불교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용수의 사상은 그의 제자인 제바(提婆Āryadeva:170~270)와 제바의 제자인 라후라발타라·라훌라바드라 등에게 계승되어 중관파라고 불리는 계통이 성립되었다.
중관파는 후일 6세기경에 공을 파악하는 방법이 서로 다름에 따라 불호(佛護 Buddhapālita: 470~540)계통의 쁘라상기까(Prasaṅgika)와, 이를 비판한 청변(清辨 Bhāvaviveka: 490~570) 계통의 스바딴뜨리까(Svātantrika)의 두 파로 나뉘었다. 쁘라상기까는 한역하여 필과성공파(必過性空派)·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구연파(具緣派) 등으로 불리었다. 스바딴뜨리까는 자재논증파(自在論證派)·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 의자기파(依自起派) 등으로 불리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저작권자 ⓒ CR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이치란의 종교가 산책 많이 본 기사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