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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정토신앙과 맥을 같이하는 일본 법연스님 창종 정토종

장정태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4/08/01 [10:43]
“<나무아미타불> 외기만 하면 구제”...특권층 넘어 일반 서민에게까지 전파

원효의 정토신앙과 맥을 같이하는 일본 법연스님 창종 정토종

“<나무아미타불> 외기만 하면 구제”...특권층 넘어 일반 서민에게까지 전파

장정태 논설위원 | 입력 : 2024/08/01 [10:43]

▲ 정토신앙의 원효와 정토정 창종 법연 스님  © CRS NEWS


장정태 박사의 한국종교학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538년이지만 토착 종교인 신도가 서민들 사이에서 성행하였고, 조정은 숭불파와 배불파가 대립히던 시기였다. 숭불파였지만 불교를 중심으로 신도와 유교의 좋은 점만을 모으려 노력한 대표적인 인물이 성덕태자다. 그는 꿈에서 한 관음의 계시를 받아 589년에 절을 건립하고 사리를 봉납한 후 법관사라는 사찰 이름을 지었다.

 

불교는 글자 그대로 부처의 교이지만 동시에 또 부처가 되는 교이다. 물론 불교의 어느 부문에 있어서는 반드시 부처가 되는 교와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한층 더 고차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중도에 방황하면서, 그것도 그것을 최고로 간주하고 있는 정도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본래 성격에서 벗어나면 모든 설은 부처가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일본의 법연 스님(1133-1212)이 창종한 종단으로 정토종이 있다. 스님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하다. <나무아미타불>을 외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부처의 자비로 구제받을 수 있다고 설파하여 특권층인 귀족, 무사를 넘어 일반 서민에게까지 널리 전파되었다. 이와같은 주장은 신라시대 활약한 원효의 정토신앙과 통하는 면이 있다.

 

법연스님은 생전에는 기존의 불교교단으로부터 가혹한 박해를 받았으나 에도시대에는 막부의 후원까지 받는 커다란 교파가 되었다. 스님의 제자 가운데 신란은 스승의 가르침을 좀더 급진화 시켜 정토진종을 개창했다.

 

법연 스님은 지방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스님이 어린 시절 다른 무사들에 의해 살해되었으나 복수를 당연시했던 그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과는 달리 아들에게 복수하지 말고 원수들을 용서할 것을 당부하고 눈을 감았다. 살아남은 아들은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그는 수행을 통해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통감하고 오로지 아미타불만이 인간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동안 사원건립 불사에 참여하고 불상조성,불화조성에 동참하는 것만이 불교의 전부라고 가르친 기존의 불교와 다른 주장을 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혹은 모르고 지은 행위마저 죄 많은 존재라 해탈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 주장과도 배치되는 가르침이다. 

 

▲ 정토종 사찰. 장정태 사진  © CRS NEWS

 

법연스님은 오로지 아미타불의 이름만 불러도중생이 극락왕생하도록 하겠노라는 경전의 약속에 근거하여 염불만을 강조하는 신앙체계를 세웠다. 법연의 생각은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일부 부자만을 위한 공덕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 스님의 신념이다. 천재지변과 전염병이 유행하던 가마쿠라 막부시대 남녀노소,빈부의 구별없이 서민 모두가 구원을 받고 극락왕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스님의 결론은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이다. <아미타불>이라고 소리내어 부르는 것이 수행이며 그것이야 말로 아미타불의 본원에 불과하다.

 

이를 오로지 염불만 닦는, 천수염불이라고 하는데, 스님의 전수염불론은 대중들이 알기 쉽고 실천하기 쉬워 삽시간에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권위를 거부하는 스님의 교단은 급속한 발전하여 기성교단의 분노를 샀다. 게다가 제자들 중에 믿기만 하면살인을 하더라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극단적인 행동하는 이들이 생겨나 국가의 탄압을 초래했다. 제자들 중 일부는 사형을 당하고, 법연스님도 유배를 당했다가 80세에 입적했다.

 

헤이안 시대 불교는 귀족중심의 불교로 큰 건물을 짓고 대형불상을 조성하는 것이 올바른 종교적 선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귀족 중심적 질서가 붕괴되고 지방 무사들이 넓은 토지를 소유한 호족으로 성장한다. 이때가 가마쿠라시대로, 이 시기부터 성, 상인이라 불리는 민간종교가들에 의해 불교가 광범위하게 지방의 서민에게 퍼져가기 시작했다. 이 가마쿠라 시대 종교개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법연이었다.

 

서민을 중심으로 한 그의 포교활동이나 주장은 신란이나 일연 등 다양한 입장의 제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후 이들에 의해 서민을 중심으로 한 가마쿠라 불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시작되었다.

 

▲ 장정태 삼국유사문화원장(철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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