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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눈으로 본 서역은 어디를 말하는가?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4/06/03 [08:25]
중국의 관점에서,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8세기까지의 서부 지역

중국의 눈으로 본 서역은 어디를 말하는가?

중국의 관점에서,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8세기까지의 서부 지역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4/06/0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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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西域)은 중국의 관점에서 서부 지역을 말한다. 고대 중국 연대기에 명시된 역사적 이름인데, 대체로 기원전 3세기부터 AD 8세기까지의 기간에 불렸던 지역 이름이다. 서역이라고 하면 그 범위가 돈황 옥문관 서부 지역인 현재 신장 남부 알티샤르(回部)와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 계곡 주변의 가장 동쪽 부분에 있는 타림 분지를 말한다. 광의적으로 보면 서아시아의 파르티아와 인도 아 대륙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 중국 돈황 옥문관(소방반성) 유적.  © CRS NEWS

 

장건의 서역 개척 이후에 옥문관은 실크로드 사이의 전략적 위치로 인해 기원전 3세기부터 중국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 우수현(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 아커쑤) 지구의 회부(回部)인들로 청나라 시대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  © CRS NEWS

 

전회에서 누차 소개한 바 있지만, 서한(西漢) 무제는 기원전 138년 흉노족 연맹의 위협을 완화하기 위하여 월지족과의 접촉을 장건에게 명하였다. 장건은 우여곡절 끝에 월지족을 만나기는 했으나 장건은 흉노에게 포로가 되어 10년 동안 투옥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임무는 실패했지만, 그가 서쪽의 여러 주를 여행한 것은 한 나라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몇 차례의 정복 전쟁 끝에 이 지역 지배를 위하여 서역도호부(西域都护府)를 설치하였다. 서역도호부는 한 제국의 행정 기관이었다. 서부 지역은 중국 한 왕조와 그 계승자들이 기원전 59년부터 서기 439년 십육국 시대 말까지 관리했다. ‘서부 지역은 옥문관 서쪽 지역, 특히 신장 남부의 타림 분지를 말한다. 이 지역은 나중에 튀르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서부 지역이라는 용어는 중국인이 중앙아시아를 지칭하기 위해 더 일반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서역 보호령은 중국 정부가 이 지역을 직접 통치한 최초의 지역으로 한나라 조정이 임명한 서부 지역 수호 장군의 권위 아래 배치된 다양한 가신 국가와 한 나라 수비대로 구성되었다. 서역도호부는 7세기에 당나라가 서역을 정벌하여 서평수호장관이 이 지역을 다시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몽골 제국 시대와 같이 동아시아, 인도 아대륙, 이슬람 세계 및 유럽을 연결하는 문화적 통로로서 후세기에 중요해졌다.

 

▲ 한 왕조의 서부 지역 확장 지도.  © CRS NEWS

 

서부 지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는 불교 경전, 특히 대승 경전으로, 상인과 순례 승려들이 중국으로 가져갔다. 당나라 승려 현장(玄奘)은 인도 유학길에 이 지역을 건너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돌아와서 서부 지역에 영향력 있는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남겼다.

 

중국은 서기 751년 탈라스 전투 이후 압바스 왕조 칼리프에게 페르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고, 서기 755년 뒤따른 혼란스러운 안록산 반란으로 인해 당 왕조는 타림 분지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얻지 못했다. 서부지역에는 또다시 많은 지방자치 국가가 등장했다.

 

▲ 실크로드의 사람들.  © CRS NEWS

 

후기 중국 왕조가 서부 지역에 행사한 영향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해졌다. 1542년 명나라 학자 마리가 편찬한 산시성 지명(陝西記記)에 잘 나타나 있다. 가욕관(嘉峪關)은 간쑤성 자위관 시에 있는 만리장성 서쪽 끝에 위치하는 관문이다. 동쪽의 산해관과 나란히 서쪽에 있는 만리장성의 중요한 관문으로서 알려져 있다. 가욕관을 벗어나면 지중해 초입의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 중국 만리장성 서쪽의 관문 가욕관.  © CRS NEWS

 

오스만 튀르키예는 단순히 튀르키예라고 하는데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동남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통치하던 광대한 제국이었다. 13세기 말 오스만 1세가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건국했으며, 1354년에 유럽으로 건너가 발칸반도를 정복하고 세 대륙에 걸친 거대한 제국을 세웠다.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며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하며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오스만 제국은 쉴레이만 1세의 통치기에 절정기를 맞았고, 사회적, 행정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당대 최고의 국가로 떠올랐다. 그 강역이 가장 넓었던 17세기 초에는 32개 지방으로 구분되었고, 수없이 많은 봉신국을 거느렸다. 이후 봉신국 중 일부는 오스만 제국에 흡수되고, 일부는 자치권을 허가받아 수백 년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 오스만제국(튀르키예)의 수도 이스탄불.  © CRS NEWS

 

튀르크족 이주가 시작되기 전에 이 지역 사람들은 인도유럽어족의 두 가지 주요 그룹이 사용했다. 오아시스 도시 국가인 호탄과 카슈가르의 사람들은 동부 이란어 중 하나인 사카를 사용했던 반면에, 쿠차, 투르판, 누란 왕국의 사람들은 토카리아어를 사용했다.

 

▲ 동로마 제국인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입성하는 메흐메트 2세(1432년∼1481년). 그는 오스만 제국의 제7대 술탄이다.  © CRS NEWS

 

아무튼 서역은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를 합병하여 러시아 투르키스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중국 청나라 통치하의 신장자치구 내륙 지역도 중국 투르키스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러시아 제국(소련)이 신장 서쪽 지역 대부분을 지배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베트남 아시아 불교평화회의에 참석한 라오스 불교 프라마하 위칫 상가라자(종정) 예하와 필자 보검스님.  ©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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