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불교 중요한 역할 수행, 최근 라마 롭장 입적
인도는 불교의 본고향인데, 수 세기가 동안 불교가 멈춘 바 있다. 10세기부터 중동의 이슬람 세력이 튀르크와 합세하여 북부 인도를 침략하더니 12세기 결정타를 가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이슬람 터키계 군대가 인도를 무차별 공격하여 특히 불교사원 파괴를 감행했다. 이때 유명한 사원불교 대학들이 초토화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날란다 불교사원 대학이다. 날란다 불교대학 도서관이 불타는데 무려 6개월간 지속적으로 화마에 휩싸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도서와 전적이 잿더미가 되었는지 상상이 간다.
라다크는 기원전 9천 년 전부터 인류가 정착했다는 증거가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수천 년 동안 아시아의 고원(高原) 지역의 교차로였다. 따라서 이웃 국가에서 탄생한 많은 문화, 전통 및 기술을 목격했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로 라다크는 이웃 국가로부터 많은 전통과 문화를 수입했고, 그것들을 모두 결합하여 라다크만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탄생시켰다.
인더스 강 다리 근처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1세기경 라다크가 쿠샨제국의 일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몇 가지 다른 짧은 브라흐미 및 카로스티 비문이 라다크에서 발견되었다.
헤미스 수도원은 드룩빠 법통의 사원인데, 일명 홍모파(紅帽派)인 '붉은 모자 종파'의 총본산이다. 헤미스 곰파(사원대학)는 라다크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사원으로도 유명하다. 1630년대에 싱게 남걀 왕의 왕실 후원 아래 설립되었다.
틱세이 곰빠(수도원)는 그 규모와 웅장함이 돋보인다. 레 타운에서 동쪽으로 19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틱세이 곰빠는 15세기 티베트의 개혁 종파인 겔륵빠의 확장시기에 설립되었다. 라다크에서 가장 큰 수도원 중 하나로, 절벽 위의 건물이 층층이 솟아 마을을 이루고 있다.
라다크 출신으로 인도불교 승단을 이끌어 온 라마 롭장(Lama Lobzang)은 당시 잠무와 카슈미르의 레 타운에서 태어났다. 라마 롭장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가족과 멀리 떨어진 지역 사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인도와 전 세계의 불교 부흥, 특히 불교 유산의 부흥을 위해 라다크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거의 60년의 삶을 바쳐왔다. 지난 3월 16일 94세로 입적한 라마 롭장은 생전에 전 세계 거의 30개국을 방문하여 정치, 종교 및 시민 사회 지도자들을 만나왔다.
존자 라마 롭장은 상좌부와 대승불교 전통 모두에서 승려로서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1952년 21세의 나이로 티베트에서 승려가 되었다. 라다크 라마들은 13세기부터 티베트 라사에 가서 학습을 했다. 그는 영어, 힌디어, 라다크어, 티베트어 등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국제통 승려였다.
지정 카스트 및 지정 부족 국가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인도 언론 매체에서는 “뛰어난 부족 지도자인 라마 롭장은 1984년부터 19년 동안 국가 지정 카스트 및 지정 부족 위원회에서 봉사했으며, 1995년부터 1998년까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국가 지정 부족 위원회 위원으로 임기를 수행한 후 공직에서 은퇴했다”고 보도했다.
근대 인도불교가 활성화 되기 전 라다크 불교는 인도 아대륙에서 큰 역할과 기능을 했다. 현대 인도 불교는 대강 4그룹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50여 년 전에는 인도 땅에서 라다크 불교가 공식적인 불교승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다크는 인도 관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라다크 자체가 불교적이라고 해야 하겠다. 실제로 라다크 계곡 전체가 부처님의 삶과 설법으로 빛나고 있으며 티베트 불교 의 전통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현재 라다크 지역 주민들은 달라이 라마 성하를 최고의 종교 지도자로 추종하고 있다. 라마 롭장도 달라이 라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도 불교 승가를 이끌어 왔다.
라다크 불교와 티베트 불교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은 13세기 초 라다크의 모럽 왕은 모든 라다크의 젊은 승려나 수련자들이 불교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해 티베트로 가는 것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라다크의 승려나 재가 불자 또는 학자들은 고등 불교학을 수학하기 위해선 티베트로 가야 했다. 이들은 당대 티베트의 유명한 사원대학에서 수년 동안 연구하고 라다크로 귀국하였다. 불교철학의 고등 연구를 위해 티베트로 가는 전통은 1959년에 갑자기 중단되었다. 티베트의 정치적 불안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쿠쇽 바쿨라 린포체(1917∼2003)는 라다크 불교 교육을 비롯한 많은 조치를 취함으로써 라다크 불교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의 지휘 하에 전통불교학을 전문으로 하는 중앙불교연구소가 탄생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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